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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생활기

꿈틀하우스를 거쳐간 사람들 — 방장부터 협력자까지, 그들이 남긴 이야기

by 불꽃왕꿈틀이 202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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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대문구 쉐어하우스 꿈틀하우스입니다.

2015년 문을 연 뒤로 꿈틀하우스를 거쳐간 사람은 참 많습니다. 방을 함께 썼던 입주자도 있고, 옆에서 자금과 마음을 보태준 협력자도 있고, 좋은 인연을 소개해준 지인도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 시간을 함께해 온 네 분의 이야기를 모은 것입니다. 실제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본인 동의를 받아 성만 밝히고 옮겨 적습니다.

정OO — 꿈틀하우스 1호점 초대 방장

태국 DOOO Academy 한국어 교사

2012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졸업이 미뤄지면서 학칙상 기숙사를 나와야 했다. 서울에서 남은 학기를 자취로 버텨야 하는 상황 앞에서 현실의 벽은 높았다. 파트타임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가족에게 손을 벌리기도 어려운 시기에 꿈틀하우스 개소 소식을 듣고 입주를 결정했다. 나이가 있다는 이유로 얼떨결에 1호점 초대 방장을 맡게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꿈틀 밥상'이다. 공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 한두 가지 요리를 하고 다 같이 나눠 먹던 시간. "나 홀로 자취했더라면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공동체의 따뜻함"이 서울 생활의 큰 힘이 됐다고 회고한다. 약 2년을 지내다 결혼과 함께 꿈틀하우스를 떠났다.

방장으로서 매달 하던 일은 전기·가스 같은 공과금을 인원수대로 나눠 안내하고, 입주자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을 들어 왕꿈틀이(운영자)와 함께 개선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형편의 청년들이 모여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현실적인 고민을 나누게 됐고, 그 경험을 계기로 이후 주변 청년들에게 셰어하우스라는 선택지를 적극적으로 권하게 됐다고 한다. 약 2년을 지내다 결혼과 함께 꿈틀하우스를 떠났지만, "청년기의 마지막 시기를 이곳과 함께했기에 다음 걸음을 더 힘차게 내디딜 수 있었다"고 돌아본다.

박OO — 꿈틀하우스 1호점 2대 방장

동해OO교회 담임

정OO에 이어 2대 방장을 맡았던 박OO은 목회자가 된 지금도 그 시절을 청년들의 '불안'이라는 키워드로 돌아본다. 진로를 정할 때, 사람을 만날 때, 소비를 할 때,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사소한 결정에서까지 청년들을 흔드는 불안의 상당 부분은 결국 돈 문제, 그중에서도 식비와 주거비 부담이라는 것이다.

"재정적 불안정이 관계와 인격에 미치는 악영향을 너무나 많이 보았고, 또한 스스로도 느껴봤다"고 말하는 그는 꿈틀 공동체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간으로 기억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자신의 삶을 나누던 시간이 그 배려를 가능하게 했다고 전한다.

그가 말하는 '꿈틀'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꿈의 틀',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잡아주는 최소한의 틀이라는 뜻과, 죽은 듯 움직이지 않던 생명체가 툭툭 건드리면 깨어나 움직이는 '꿈틀꿈틀'의 몸짓이라는 뜻이다. 매주 구성원들이 모여 각자의 하루를 나누는 자리를 그는 "꿈틀거리는 물결파를 일으키는 시간"이라 표현했다. "청년들의 솜사탕을 최소한으로만 떼어가고, 남은 것이 온전히 그들의 꿈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가 지금도 꿈틀 공동체를 지지하는 이유다.

신OO — 협동조합 꿈틀프로젝트 이사

와OOO 이사

2012년 가을, 대학원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인연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파트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 구도와는 거리가 먼 신념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운영자의 모습을 오래 지켜봤다고 말한다. 서툴지만 진심 어린 방향성에 끌려 돕기 시작했다는 그는 꿈틀하우스의 가치를 이렇게 정리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청년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그 안에서 꿈을 꾸고 실현하기 위해 서로 뭉치고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것."

주변에서는 "그런 신념으로 셰어하우스 100호점을 만든다니" 하며 의아해하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청년들을 향한 진심 하나는 분명하다고 판단해 돕기 시작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금은 협동조합 꿈틀프로젝트의 이사로서, 저렴한 비용으로 청년들이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그 안에서 꿈을 실현하도록 돕는다는 목표에 계속 힘을 보태고 있다.

어OO — 초기 멤버를 꿈틀하우스에 소개한 지인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동문

정작 본인은 사정상 입주하지 못했지만, 고시원에서 월 40만 원을 내고 잠만 겨우 자던 대학원 동기를 비롯해 여러 지인을 꿈틀하우스에 소개했다. "이 친구는 꿈틀로 입주하고 나서는 집에 초대하기도 해서 몇 번 놀러 간 적도 있을 만큼 삶의 변화가 많이 바뀐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보증금 없이 15만 원에 2인 1실을 쓰는 조건에 처음엔 "환경을 조금 더 개선하면 어떠냐"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주거환경 개선보다 주거 문제 해결 자체를 우선한 운영 철학을 지켜보며 그 취지에 공감하게 됐다고 말한다.

고시원에서 지내던 친구는 꿈틀하우스로 옮긴 뒤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전에는 수업 끝나고 집에 가방만 두러 가도 방이 좁아 밖에서 기다리던 친구였는데, 입주 후에는 오히려 집에 초대해줄 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함께 지내는 이들과 끼니를 나누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진짜 식구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소개했던 입장에서 지켜본 변화였기에 더 뿌듯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네 분 말고도 꿈틀하우스를 거쳐간 사람은 더 많습니다. 각자 머문 시간도, 맡았던 역할도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하나입니다. 혼자 버티는 것보다 함께 버티는 게 낫다는 것. 지금 이 블로그에서 청년 주거 정책과 전세사기 예방법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는 것도, 결국 이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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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담긴 이야기는 실제 입주자·협력자 분들이 남긴 글을 바탕으로, 본인 동의를 받아 성만 공개해 정리했습니다.

최종 확인일: 2026-09-22